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콘스탄티노폴 민족성 말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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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피해 == ||<bgcolor=#8B0000><color=#fff> '''항목''' ||<bgcolor=#8B0000><color=#fff> '''규모''' || || 사망 || 7,000명 이상 || || 실종 || 약 19,500명 || || 구금 누계 || 약 61,000명 || || 폐쇄 학교 || 112곳 || || 철거 신전 || 약 340곳 || || 공개 처형 사제 || 186명 || 사망자 7,000여 명은 공개 처형과 즉결 처형, 수용소 내 사망, 시위 진압 과정의 사망, 구역 전쟁 중 민간인 사망을 합한 수치다. 실종자 19,500여 명의 대부분은 정리 작전 시기 연행된 뒤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로, 1990년대 이후 알티노 구금시설 인근에서 여러 차례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지만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일부에 그친다. 언어와 공동체의 피해는 더 오래 남았다. 가정에서 콘스탄티노폴-빌베른어를 쓰는 주민의 비율은 1968년 78%에서 1990년 31%로 떨어졌고,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닌 세대 상당수는 빌베른어를 알아듣기만 할 뿐 읽고 쓰지 못한다. 노인 세대의 피해도 컸다.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빌베른계 노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입을 열 수 없게 되었고, 신전과 제사가 사라지면서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도 잃었다. 1975년부터 1984년까지 구시가 60세 이상 인구의 자살률은 점령 이전의 네 배 가까이로 치솟았다. 생존자 증언집에는 말을 잃은 채 집 안에서만 지내다 세상을 떠난 노인들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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